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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 Lion - When The Children Cry [맘에드는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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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성규 댓글 0건 조회 9,037회 작성일 09-05-23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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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 Lion - When The Children Cry 

몇달 전에만 해도 내 핸드폰 메인테마였던 곡,
내가 무엇에 끌리어 좋아하게 되었나 생각해보니 다름 아닌 기타 소리다.
언제일까? 처음으로 White Lion의 프라이드라는 앨범을 만나게 된다.
자신을 밴 핼랜의 추종자라고 할만큼 에디의 스타일을 많이 따라한 앨범이다.
감미로운
기타소리 좋고 가사 또한 좋고
기타치시는분들은 이곡을 많이들 좋아하실거 같다는...
들어보시면 아시겠지만 핑거링이 매우 경이롭다. 

 

아름다운 멜로디의 어쿠스틱 발라드 'When The Children Cry'로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화이트 라이온(White Lion)은

본 조비(Bon Jovi), 포이즌(Poison), 유럽(Europe) 등이 큰 성공을 거두며 팝메탈 전성기를 열었던 87년에 애틀란틱(Atlantic) 레코드사를 통해 공식 데뷔해서

5년간 베스트를 포함해 4장의 앨범을 발표했으며 두 곡의 Top 10 싱글을 배출하는 등 성공적인 활동을 벌여 80년대 후반 대표적인 팝메탈 밴드의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83년에 본격적으로 팀을 결성한 기타리스트 비토 브라타와 보컬 마이크 트램프는 여느 밴드처럼 클럽 등지에서 지지기반을 쌓아나갔다.

그러던 중 일본에서 레코드를 취입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84년 일본 내에서만 발매된 [Fight To Survive]라는 앨범을 제작한다.

이 앨범은 그리 대단한 반응을 얻지는 못했지만 이들에 대한 입소문을 미국으로 퍼뜨리는 계기가 됐고 이듬해에 한 마이너 레이블을 통해 미국내에서 발매되었다.

 이 와중에 이들은 애틀란틱 레코드와 연결이 되었고 마침내 정식 계약을 체결, 87년에 공식 데뷔앨범을 발표한다.

당시 애틀란틱에서 자사의 유망 밴드로 지목한 덕분에 레코드사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앨범 홍보에서 큰 이득을 얻은 화이트 라이언은 수퍼밴드 에어로스미쓰(Aerosmith)의 오프닝 밴드로 기용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한편 데뷔앨범 [Pride]의 수록곡 'Wait'가 싱글차트 8위까지 오르는 대성공을 거두면서 이들의 지명도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이어서 두 번째 싱글 'Tell Me'가 차트 58위에 랭크되었고, 이들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드날릴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곡인 'When The Children Cry'가 세 번째 싱글로 커트되어 싱글차트 3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이 곡은 화이트 라이언 최고의 히트곡이 되었다.

 

여느 팝메탈 밴드와 다를 것 없이 이들은 MTV에서도 큰 호응을 얻으며 인기몰이를 계속했고 데뷔 앨범은 2집 발매 전까지 200만장이나 팔려나간다. 88년초 각종 시상식에서도 '최우수 신인밴드'상을 수상하며 밴드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88년 한 해를 에어로스미스와의 유럽 순회공연으로 보낸 이들은 89년 팬들의 집중적인 관심 속에 2집 [Big Game]을 발표한다. 'Radar Love'가 첫 싱글로 커트된 2집 [Big Game]은 기타리스트 비토 브라타가 여러 기타 매거진에 의해 '우수 기타리스트'로 선정되도록 한 작품이었다. 그는 기타 플레이어(Guitar Player)지에 표지모델로 등장하기도 했다.

 2집 발표 이후 성황리에 월드투어를 치룬 이들은 역시 2년여 만인 91년에 3집 [Mane Attraction]을 발표한다.

 'Lights And Thunder'와 같은 대곡이 수록된 이 앨범에는 팝메탈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화이트 라이언의 음악적 성숙이 담겨있었다. 'Broken Heart', 'Love Don't Come Easy'같은 히트곡들은 물론 다분히 팝적이긴 했지만 그간에 보여준 단순한 팝메탈과는 노선을 달리하는 '무게있는' 곡들이었고, 평론가들의 견해도 전작들에 비해 월등히 좋은 편이었다.

 

문제는 90년 이후에 발표된 많은 팝메탈(LA메탈) 밴드들의 앨범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이런 음악적 변신이 상업적 성공으로 연결되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별로 큰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던 3집(국내의 반응은 매우 좋은 편이었다)을 발표하고 여느때와 다를 바 없이 크고작은 공연을 치룬 이들은 이 앨범을 끝으로 해산한다.

 밴드 해체 이후 애틀란틱 레코드사는 재빨리 이들의 지난 5년간 활동을 정리한 베스트 앨범을 발표한다. 이 앨범에는 라이브 2곡을 포함해 1집에서 6곡, 2집에서 3곡, 3집에서 4곡이 발췌 수록돼 있다.

 뿔뿔이 흩어진 후 비토 브라타와 마이크 트램프는 각자 솔로 활동을, 나머지 멤버들은 솔로 아티스트의 세션맨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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